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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와 목욕탕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 중

우리들이 농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건축가는 해결사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고, 공간적으로 조직해주는 그런 직업입니다. 특히 공공건물이 그렇습니다. 쓸 사람에게 물어봐야 됩니다.

이 영상을 보며 product engineer의 역할을 떠올렸다. 건축가가 건물보다 그곳을 사용할 사람의 삶을 먼저 보듯, 개발자도 코드보다 제품을 사용할 사람의 삶을 먼저 봐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이 지금의 글로 이어졌다. 앞으로 이 글에서 계속해서 등장할 ‘면사무소’와 ‘목욕탕’ 이라는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 이 글을 읽는 모든이들이 1분 30초 남짓하는 영상을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곤 이 글이 우리 사회 전반 혹은 개발자들이 ‘면사무소’가 아닌, ‘목욕탕’ 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글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삶 혹은 사회엔 수많은 ‘면사무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꽤나 오래전부터 이를 인식해왔다. 아마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비슷한 예시를 몇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내 생에 첫 ‘면사무소’ 는 아마 야간자율학습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던 고교시절이었다. 당시의 포면적인 취지는 입시와 성적 중심의 경쟁이 만든 비교육적인 관행에서 학생들을 해방시켜주고, 학생 자신이 방과 후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아온 현실은 그런 취지의 기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시 경쟁은 당연히 야간자율학습 폐지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그럴 수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애초부터 학교를 나와 학원이나 과외로 향하고 있었고, 형편상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교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석식을 먹고, 늦은 시간까지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장소였다.

자습을 하다가 막히는 문제가 생기면 학교에 남아 있는 선생님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있었다. 야자 폐지와 함께 석식지원도 중단되었다. 누군가는 저녁을 건너뛰었고, 누군가는 학교 밖에서 이전보다 비싼 저녁을 사 먹었다. 물론 선생님에게 질문할 기회도 줄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다시 강제해야 했다거나 그 당시 정책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에 기대고 있던 사람들의 저녁과 공부할 자리, 나아가 그 제도를 사용하던 사람의 하루를 봤다면 대안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실제로 만나봐야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발자들은 특히 목적과 수단의 전치라는 함정에 항상 노출되어있다. 좋은 아키텍처를 만들고 싶고, 더 아름다운 코드를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나도 그런 일에서 효용을 느끼기도한다. 하지만 우리가 월급을 받고 사무실에 엉덩이를 붙히고 앉아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것이고, 개발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자각해야한다.

해석에 유의해야 할 점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코드 퀄리티의 중요성이 낮아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코드를 high quality로 작성하는 것이 기본전제라는 점을 말하고싶다. 기본적인 기술 문제에 매번 모든 에너지를 써야한다면 제품을 생각할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에이전트가 작성한 코드를 검증하지 못하거나, 작은 변경의 영향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빨라진 속도만큼 더 빠르게 잘못된 제품을 만들수도있다.

결국 기본 체급을 올리는 훈련은 여전히 필요하다. 중요한건 역할의 확장이다. 코드를 잘 만드는 능력이 덜 중요해진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역할이 끝나지 않게 된 것이다. 잘 만든 코드를 당연한 바닥으로 두고, 그 위에서 사용자의 문제와 제품의 방향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개발자에게 추가된 역할이고, 그것을 놓치는 것이 동시에 우리가 자주 빠지는 함정인 것 같다.

사용자를 가까이 둔다는 것은 거창한 리서치 프로그램을 만든다거나, 데이터 분석 능력을 키워야한다는 뜻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고객 문의 한 건을 직접 읽고, 사용자가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있다. 운영 비용을 줄이려고 만든 자동화가 누군가에게 상담원과 이야기 할 마지막 통로를 없애는 것은 아닌지, 입력 단계를 줄이면 더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단계에서 확인하던 정보를 필요로하던 사람은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에이전트가 복리로 쌓아준 시간을 그런 곳에 더 써야한다.

에이전트가 벌어준 시간이 자동으로 자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으로 더 많은 feature 를 만들 수도 있고,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사용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제 개발자에게 필요한 +α는 새로운 기술일 수도 있지만, 철학이나 인문학, 심리학처럼 인간을 이해하는 시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사람의 삶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는가다.

에이전트는 면사무소를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그럴듯하게 지을 수 있게 해준다. 더 빨리 지을 수 있게 된 지금일수록, 쓸 사람에게 물어보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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